토픽 여행·먹방

야심한 밤, 삿포로 영화

공무원 · l*********
작성일2020.08.06. 조회수426 댓글2

윤희에게. 반년 전쯤이었나, 부산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 된 작품이다. 개봉하면 꼭 극장에서 봐야겠다고 다짐 했지만 일상 속에 잊혀졌었다.

개학이 연기된 요즈음, 사라져 가고있는 내 방학이 안타까워 생산적인 일을 찾아 보았다. 등산은 확진 지역이니 패스. 여행은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니 또 패스. 그리고 게으름을 부릴 수 있는 넷플릭스 정주행을 시작하였다.

영화를 보기 전 내가 알고 있는 건 주인공일 뿐 내용도 배경도 전혀 몰랐다. 다만, 제목에서 장르는 멜로이고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 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았을 때에는 시작부터 엔딩까지 푹 빠져들어 보았다.

배경은 삿포로였다. 작년 이 시기에 삿포로를 동기들과 다녀왔었는데, 그때에 갔던 곳들이 하나 하나 보였다. 밤새 내린 눈은 여전히 허리까지 차올랐고, 그 사이 속에서 비치던 달도 그대로였다. 영화 속 인물들도 '달이 참 예쁘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겨울 속 오타루의 눈과 달, 밤과 고요를 닮은 서로가 어울리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 윤희는 무미건조한 여자였다. 사랑이 없었다. 전 남편이 그녀를 잊지 못해 찾아왔음에도 그녀의 외로움은 변치 않았다. 윤희는 오직 딸만을 위해 살아갈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윤희의 전 남편은 딸 새봄의 질문에 '네 엄마는 사람을 외롭게 해' 이렇게 답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일본에서 온 편지 한장은 다시 윤희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딸과 함께 찾아간 삿포로는 너무도 일상적이다. 여행이라고 왔지만, 그녀에겐 첫사랑이 살고 있는 곳임이 더 맞는 말이겠다. 하루종일 집에 있다가, 밥을 먹고 다시 방안에서 쉬는 동안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단 한번 몰래 찾아간 편지 속 장소에서 그녀는 그녀를 보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렇다. 그녀는 윤희에게 고등학교 시절에 사랑을 나눴던 존재였다. 서로 기댈 수 있는 대상이었고, 타인이 들어올 수 없을 만큼의 마음을 채우던 이었다. 하지만, 첫사랑의 감정은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았으며 가족들마저 윤희를 외면했다. 결국 집안의 반대와 부모님의 이혼으로 떨어졌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은 그리움과 체념으로 남았었다.

아름다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것이 부끄럽고 놀랄 일이 아니다. 결국 윤희는 딸에 도움으로 첫사랑을 만났고, 서로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확인한다. 아직 서로를 그리워한다고. 절절한 포옹하나 없이 단번에 서로를 알아보고 마주하는 재회에서 둘만의 교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윤희는 처음으로 웃음을 띈다. 무미건조한 삶에는 생기가 엿보인다. 물론 아직까지도 그 사랑을 고백하기에는 낯설었지만, 딸과 함께 새시작을 하기엔 충분했다. 어린 소녀의 상처가 중년이 되어서도 계속 되었던, 그 죄책감 속에 살았던 두 사람의 새로운 한걸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뭐든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잖아' 이 대사 하나에서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가 담겨있다. 사랑없는 삶의 댓가로 평생을 고통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윤희는 이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로 다짐했다. 윤희에겐 잘못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윤희에게'는 그 어떤 특별함도 없다. 그저 단순한 사랑의 이야기다.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움의 결정체 말이다. 그래서 좋다.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보고 싶은 그 모습만으로도 '사랑'의 의미와 모습은 충분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담담하고 바른 시각으로 사랑을 보여준 윤희에게는 베스트였다. #삿포로

댓글 2

공무원 · 구***

오 잘 읽었어! 이 영화 ost 추천하는 사람도 있던데

카페24 · m*****

아, 이영화 맨 마지막에 윤희가 읊조리는 말로 끝나면서 엔딩곡 올라갈때 그 감동/먹먹함을 잊을 수가 없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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