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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1년 명종 21년

대구교통공사 · 포********

○ 봄 정월에 정당문학 이지명(李知命)이 졸하였다. 지명은 많은 서적을 널리 읽고 사부(詞賦)를 잘 지었으며, 초서(草書)와 예서(隷書)도 잘 썼다. 과거에 급제하여 황주 서기(黃州書記)에 임명되니 관직에 있을 적에 청렴하고 정직하며,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여 살린 사람이 매우 많았다. 후에 충주 판관(忠州判官)이 되었을 때도 치정(治政)을 황주에서와 같이 하였다. 경인년의 난리에 중앙과 지방의 문신이 도망하여 숨을 곳이 없었는데, 지명만은 고을 사람에게 보호되어 죽음을 면하였다. 왕이 그가 문학과 행실이 있다고 하여, 뽑아 간관을 삼으니, 이로부터 이르는 곳마다 명성과 치적이 나타났다. 과거의 고시를 두 번이나 맡았는데 조충(趙冲)ㆍ한광연(韓光衍)ㆍ이규보(李奎報)ㆍ유승단(兪升旦)ㆍ유충기(劉冲基)는 모두 그가 선발한 사람이었으니, 세상에서 인재를 얻었다고 칭찬하였다.

○ 금 나라에서 완안극충(完顔克忠)을 보내와서 생신을 하례하였다.

○ 2월에 금 나라에서 완안신(完顔臣)을 보내와서 황태후의 상(喪)을 알리므로, 대장군 한정수(韓正修)와 낭중 최돈례(崔敦禮)를 금 나라에 보내어 조상하게 하고, 대장군 문득려(文得呂), 사업(司業) 이세장(李世長)에게는 치제(致祭)하게 하고, 왕이 군신(群臣)을 거느리고 도성에서 애도를 표시하였다.

○ 지문하성사 백임지(白任至)가 졸하였다. 임지는 농민 출신으로 처음에 날램과 용맹으로 선발될 때까지는 처자를 이끌고 서울에 와서 세들어 살면서 땔나무를 지고 쌀을 사서 생활하였는데, 의종(毅宗)이 그를 선발하여 내순검군(內巡檢軍)에 충원시키자 어가(御駕)를 호종하고 출입하면서 호위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노고(勞苦)하였다고 하여 대정(隊正)에 충원되었는데, 경인년의 난리에 무인이 세력을 얻게 되자, 드디어 현달하였다. 그 아내가 주찬(酒饌)을 준비하고 추종(騶從)을 성대하게 하여 옛날 새들어 살던 집의 노파를 찾으니, 노파가 놀라 탄식하기를, “많구나 너의 복이여."라고 하였다.

○ 3월에 참지정사 박순필(朴純弼)이 졸하였다. 순필은 사람됨이 의표(儀表)가 뛰어나고 수염이 아름다웠으며, 진퇴와 언행을 모두 사람들이 칭찬하는 바였다. 경인년과 계사년 뒤에 문신이 다 죽으니, 그 당시에 부서(簿書)가 많이 쌓여 있었는데 순필이 혼자 붓을 잡고서 시종토록 게을리함이 없었다.

○ 가을 8월에 서해도(西海道)에서는 황충이 발생하여 벼농사를 크게 손상시키고, 청주에서는 큰물이 져서 백성의 집이 떠내려 가고, 덕수현(德水縣 경기 풍덕(豐德))에서는 땅이 30척 깊이나 내려 앉았다.

○ 겨울 10월에 병부 상서 이영진(李英搢)이 졸하였다. 영진의 처음 이름은 총부(寵夫)이다. 물고기를 팔아 생활하다가 나졸(邏卒)에 충원되었다. 성품이 잔인하여 화란(禍亂)을 좋아하였는데, 경인년에 두 이(李 이의방 이고)에게 붙어 마음대로 사람을 해치니, 세상에서 잔인ㆍ포학한 자를 말할 적에는 반드시 '총부(寵夫)이다’ 하였다. 경대승이 권세를 잡게 되자 영진이 두려워 위축되더니 대승이 졸하자, 다시 흉악하고 사나움을 마음대로 부렸다. 갑자기 상서(尙書) 벼슬에 승진되자 백성을 한이 없이 침탈하여 집이 부자가 되었다. 일찍이 북조(北朝 금 나라)에 사신 가기를 청하여 연로(沿路)에서 재물을 요구하니 군(郡)ㆍ현(縣)에서 서로 다투어 뇌물을 준 것이 만금(萬金)이나 되었다. 금 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네가 전에 의주의 수졸이 되었을 때에 고을 사람이 모두 '마음이 짐승과 같은 사람이다.’라고 불렀는데, 너희 나라에 사람이 없어서 너를 고관으로 임명하여 사신으로 보냈구나." 하면서 이르는 곳마다 모두 거만스럽게 꾸짖으며 예(禮)로 접대하지 않았다. 돌아와서 그 아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다른 나라에 사신가는 것을 면하였으면 다행이겠다." 하였다.

○ 11월에 예부시랑 임항(任沆)이 졸하였다. 임항은 어릴 때부터 글을 잘하고 풍모(風貌)가 맑고 준수하였다. 외척으로서 세력이 성하였으나 남에게 교만하지는 않았다.

○ 12월에 두경승을 판이부사 수국사(判吏部事修國史)로, 이의민을 판병부사로, 이혁유(李奕㽔)를 중서시랑 평장사로, 권절평(權節平)과 조영인(趙永仁)을 참지정사로, 유승(劉升)을 수사공좌복야(守司空左僕射)로, 김영존(金永存)을 지추밀원사로, 김순(金純)을 동지추밀원사로, 손석(孫碩)과 왕도(王度)를 추밀원부사로 삼았다. 손석이 어느 날 김영존과 같이 추밀원 청사(樞密院廳舍)에서 서로 욕설로 꾸짖으니 마치 두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것 같았다. 같은 반열에 있는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위축되어 한 사람씩 나가 버리고, 오직 왕도(王度)만이 조용히 타일러 화해시켰다. 후에 경승이 의민과 문하성 안에서 일을 의논하다가 서로 어긋나서 의민이 주먹을 휘둘러 기둥을 치면서 말하기를, “네가 무슨 공이 있기에 벼슬이 내 위에 있느냐."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액원(掖垣 문하성(門下省))에는 이의민과 두경승이요, 추밀원에는 손석과 김영존이다 [掖垣李杜密院孫金]." 하였다.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조롱하기를, "나는 이의민과 두경승을 두려워하나니, 흘연(屹然)히 참 재상(宰相)이라네. 황각(黃閣)에 있는 3, 4년에, 주먹바람만 만고에 전하리라.[吾畏李與杜 屹然眞宰輔 黃閣三四年 拳風一萬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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