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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넋두리

비공개 · h******
작성일2023.04.19. 조회수790 댓글17

언니가 두 명 있다
20대 초반까지는 언니들 인생은 나와 상관 없다고 생각했지
회사 생활에 치여 이곳 저곳 전전하다 백수가 되어도, 맨날 부모님이랑 싸우고 집에서 히키코모리 처럼 지내도, 혼기 놓치고 커리어 놓치고 공장을 전전하며 살아도, 몸 관리 제대로 못해서 살 찌고 몸이 망가져도
나는 내 인생이 있고 나는 나로서 잘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도 객관적으론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없지
하지만 내가 벌어 내가 쓰고 가족들이랑 친구들이랑 애인이랑 행복할 수 있으면 그만 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근데 나이 먹고 20대 후반이 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혹시나 언니들이 내 앞길을 막으면 어쩌지?
번듯한 직업도, 안정적인 가정도 없는 언니들이 내 발목을 붙잡으면 어쩌지?
조금 지나 지금은 그 생각이 바껴서
‘내가 나중에 언니들 탓을 하면 어쩌지?’
어디선가 봤는데, 나와 내 가족을 무시하는 사람이랑은 결혼하지 말라는 말
‘그래 뭔데 우리집을 무시해. 알지도 못하면서.’
근데 또 한 켠에는 결혼하는데 당연히 상대 집안을 보는게 맞으니까 내가 무시 당해도 할 말이 없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귀하게 키운 자식을 문제 있는 집에 보내고 싶지는 않겠지’

지나온 시간이 후회됐어
난 몰랐지 언니들이 10년 뒤에도 이렇게 살고 있을 줄은
나는 어렸고 늦둥이로 태어나 부모님과 언니들한테 사랑만 받고 자랐으니까
부족해도 부족한 줄 몰랐고 그냥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았으니까
성공에 대한 과한 욕심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 언니들이 열심히 살아가겠지’ 라는 생각에 난 나에게 집중하며 내 페이스대로 인생을 살았으니까
근데 요즘은 후회돼. 더 열심히 살걸. 전문직을 노려볼걸. 대기업 취직을 노려볼걸. 만족하지 말고 욕심낼걸..
내가 어디 잘난 사람이 아니고 천재가 아니기에 욕심내고 노력했어야 했는데 어렸던 나는 그저 만족 하며 살아왔다

"지금이라도 노력해!"
노력할 수 있지 그리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어
근데 마음속에서 불쑥 불쑥 올라와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 보면
집안은 어떤지 먼저 살펴보게 돼
아 이 정도 집안은 돼야 이렇게 사는구나
혹은 많이 배우고 기회가 많은 친구들을 보면서
아 이 정도 집안이 되니까 걱정 없이 지원을 받는구나
이 친구들은 형제 자매 고민이 없어 보이네
다들 건실하게 자기 일 하는 형제 자매를 두고 있구나
‘부럽다’

미치겠다
비교하고 싶지 않은데 비교하고
언니들이 그저 한심해 보이고 근데 나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고
공무원 퇴직하고 연금 받으시는 아빠, 60이 넘었지만 요양 보호사로 일하시는 엄마.
그리고 백수 언니와 공장에 다니며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는 언니.

공장에 다니는 사람을 비하 하는 게 아냐
분명 어릴 적 꿈이 있고 배운 게 있는 언니인데
어디서부터 꼬인건지 다 포기하고 공장을 다니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그래
모아둔 돈도 그렇다고 특별히 물려받을 재산도
사랑하는 애인도 자주 만나는 친구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같아서 마음 쓰이는데
나는 자꾸 외면하게 된다

혼자 살고 부터 더 그렇게 된 것 같아
안보이니까 마음이 놓이고 나는 행복하다고 ‘착각했어’

이제 그 착각이 깨지고 현실을 바라보니 답답하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나친 걱정일까
요즘은 자격지심까지 생기고 있어
친구, 애인한테
‘형제 자매들이 평범해서 좋겠다. 잘나서 좋겠다. 형제 자매가 평범하고 문제 없다는 건 무슨 기분일까’

백수 언니의 경우는 더 심각하지
20대 초반 회사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아서 그 뒤로 간호조무사 공부를 하고 병원에 취직도 했지만 얼마 못 가 그만두고 그 뒤로 쭉 백수가 됐어
10년 넘게 그 생활이 이어지니,
부모님과 싸우는 일도 잦고 무엇보다 대화가 잘 안 통해
혼자 비꽈서 듣고 가족들한테 화내기 일수.
매번 싸움을 일으키는 장본인
요즘은 조용하지만 재작년까지는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심각했어
정신병원 강제 입원을 고려할 만큼
하지만 엄마가 강제 입원은 하기 싫어하셨어
돈도 돈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안되고
한마디로 미친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엄마는 마음이 아팠나 봐
형제인 나는 사실 냉정했어 그냥 집에 없는 편이 낫지 않나 싶었거든
다른 언니도 백수 언니 때문에 화병을 얻어 1년 가까이 기침 하는 병에 걸렸었어
어느 병원을 가도 고치지 못했고 스테로이드를 과다 복용해서 살이 엄청 쪘었지
너무 안타까웠고 마음이 아팠는데 언니는 모든 상황을 유쾌하게 넘기려고 했고 씩씩하게 병원 다녔어 나였으면 모든 우울증에 걸렸을 것 같아
이 병을 얻기 전까지는 연애도 하고 그랬는데, 커리어도 끊기고 연애도 끊기고 나이 먹은 노처녀가 됐어

너무 미안하기도 해
난 늦둥이에 어리고 철이 없었어서
나 정도면 잘한다 생각했어
아니, 남들은 형제 자매 같이 부모님께 효도 하고 그러는데
난 나 혼자 해야 하니 매번 부족했고 부모님께 더 해드리지 못해 죄송했지 언니들은 양심이 없는건가 생각도 했고

고등학생 때부터 사회 초년생 때 까지는 백수 언니랑 대화도 많이 했어 그러다 싸움으로 이어진 적도 많지
‘가족들한테 왜 그러냐. 살을 빼면 자신감을 얻을 거다. 돈 벌고 쓰면서 살아야 활기가 생기는 거다. 언니도 할 수 있다. 40살에 공무원도 합격한다. 언니라고 뭘 못하냐’
정말 수없이 얘기하고 조언하고 격려했어
결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은 대화도 잘 하지 않아 본가에 갈 때만 하는 정도야

나보다 더 큰 문제를 안고도 앞을 향해 나아가며
본인의 삶을 멋지게 개척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나도 알아
근데 사람은 다 다른 인격과 성격, 그릇을 가지고 태어났잖아
나는 지금껏 이 정도일 수 밖에 없는 그릇 이었던 거지
인정해 지금까지 나는 안일했고 게을렀고 마냥 행복했어
근데 요즘 나를 보면 너무 못났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굳이 주변 사람들한테 자격지심을 왜 느끼는지, 가만히 있는 가족들을 걸림돌로 만들어 버리는지, 너는 정말 가족들을 사랑하는 게 맞나? 친구들, 애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거 맞나?

진짜 볼품없고 한심하다고 느꼈어
근데 어쩌겠어 이것 또한 나 인걸
받아들이자 받아들이자 걱정되는 만큼 언니들을 아껴주고 사랑해주자 누구보다 언니들을 가까이서 봐 왔잖아 왜 그렇게 됐는지 너무 잘 알잖아 너가 이해해주지 않으면 언니들 어떡하라고. 부모님 너무 힘드시잖아 아껴주자 사랑하자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언젠가 부딪힐 이 문제
결혼을 하게 되든 안하게 되든, 혹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는 그 어느 날, 어떻게든 부딪힐 문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지 너무 막막하고 두렵고, 아직도 마음이 요동치고 무겁다
그 날까지 나는 나대로 노력하고 페이스 끊기지 말고
주변 사람들 챙기면서 가족들 아끼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껴지는 무기력감.
내가 이겨내야지 어떡하겠어
결혼하고 싶고 가정도 이루고 싶다면
내가 단단해지고 담담해지고 강해져야지

이렇게 라도 넋두리 해본다 그냥

댓글 17

새회사 · h******

힘내

새회사 · h******

물론 안읽어봤어

비공개 · h****** 작성자

고마워 읽지 않아도 돼 혼자 주절거려봤어 ㅎㅎㅎㅎ

새회사 · i*********

겪어보지 않은 입장에서 뭐라 이해한다고는 차마 못하겠네...힘내. 근데 그 언니분은...진짜 충격요법이라도 필요할 거 같은데. 네가 사랑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듯...

비공개 · h****** 작성자

ㅎㅎㅎ 충격요법으로 작년에 엄마가 가출쇼 했었어 ㅋㅋㅋㅋ 우리집으로 ㅋㅋㅋ 뭐 그결과 그 뒤로는 좀 잠잠하대 ㅎㅎ 다행이지 싸우지라도 않아서

새회사 · i*********

한번 더하시는건 어때..부모님 평생 건강하실거 아니고 못됐게 들리지만 언젠가는 자립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오는데

비공개 · h****** 작성자

음 그건 그래 부모님이 영원하신건 아니니까..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일까 지금 사시는 곳이 자가셔서 거주 문제는 크게 걱정하진 않아 그 뒤에 본인 생산능력이 걱정이지

작성자가 삭제한 댓글입니다.

비공개 · h****** 작성자

으응ㅎㅎㅎ 주변에 말 못할 고민이다 보니 정말 털어놓고 싶어서 우울한 글이지만 이렇게 커뮤에라도 털어놔본다

작성자가 삭제한 댓글입니다.

비공개 · h****** 작성자

형은 부모님 노후까지 걱정이겠구나 욕심 버리고 살려면 살겠지만 우리 인생도 더 밝을 수 있는데, 너무 안타깝지 ㅎㅎ 남들은 이만큼 해도 잘 사는데 난 이만큼 하면 안되는 세상 같아서.. 문제는 선천적인 문제가 아닌 후천적인 문제라 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지금까지 와버렸다는거지.. 무기력감이 강하게 들지만 우리 힘내자

새회사 · n********

끊어내고 인생 잘 갈길 ㅠㅠ

비공개 · h****** 작성자

연을 끊을까도 생각했었어 ㅎㅎ 근데.. 인생이 버거워서 저리된 걸.. 도박이나 알콜중독도 아닌데 매몰차게 버리는건 마음이 아파 줄 수 있는건 없지만 사랑은 줄 수 있으니까.. 힘 닿는데까지 내 미래의 남편과 아이들에게 피해가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볼게 우선

새회사 · n********

응 완전히 끊으라는건 아니고 경제적으로 확실히 분리되라는 말이었어 화이팅해!

한국주택금융공사 · o*****

내 얘기인줄…. 잠시 대화할수 있을까? 쪽지가 안보내지네

비공개 · h****** 작성자

내가 쪽지 보내지려나??

국세청 · l********

그 첫째언니 진짜 어떻게 안 하면 부모 노후 갉아먹고 살 듯 ㅜ

공무원 · 그*****

백수형제 있는집인데 공감…너네 공장다니는 둘째언니?는 건강한 마인드에 생활력있고 건강하신거임. 둘째언니때문에 결혼할때 뭐라고 하는 사람이랑은 상종말아야함. 근데 너네 큰언니?는 문제가 있음. 나도 내 형제가 저모양이라 뭐라 말하기가 참 어려운데, 부모가 아니라 주위 형제의 삶을 갉아먹는건 맞음. 내가 그러거든. 넌 니 언니가 있어서 지금 그걸 피하고 있는거임. 안타깝지만 힘내라

비공개 · h****** 작성자

아 큰언니가 공장다니고 작은언니가 백수야 무튼.. 맞지~ 큰언니가 어떻게 보면 작은언니 존재를 막아주고 있는거같아 단 둘이었다면 힘들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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