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픽 썸·연애

오래된 사랑의 회상

삼천리 · 자******
작성일2023.10.09. 조회수319 댓글4

아내와 아이들이 미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아닐거라고 믿고 결혼했는데, 결혼하고 얼마 안되서 나는 혼자가 되었고 앞으로도 꽤 오랜시간동안 혼자일 것 같다.

얼마전 조금 긴 휴가를 쓰고 가족을 만나러 미국으로 가는 길이었다. 출국 게이트를 지나 면세점에서 선물을 사러 가는 길 나는 익숙한 체크무늬 스카프를 한 사람을 보았다.

22살 내 첫사랑이 시작됐고, 그 첫사랑이 감당할 수 없는 결혼으로 우리를 더 이상 하나일 수 없게 만들었다.

어린시절 나는 가난했다. 어머니는 매일 술에 취해 떠난 아비를 원망했다. 매년 내 생일이 짜장면 먹는 날일 정도로 나는 가난했고, 어린시절부터 내 스스로 성공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어머니는 내가 1등을 하지 못하면 매를 들었다. 1등을 해서 떠난 아비가 후회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난 어머니의 슬픈 울음소리가 싫었다. 그래서 기를 쓰고 1등을 하려고 했고, 그리고 어머니의 자랑이 되도록 대학에 들어갔다. 다만 어머니가 기대한대로 아비가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 시절 나는 여름방학마다 막노동을 했다. 등에 무거운 벽돌을 짊어지고 언덕을 지나다보면 내 지긋지긋한 가난도 불행도 잊혀지는 것 같았다. 등에 무거운 벽돌을 짊어지고 계단을 오르던 어느날 뜨거운 햇살에 잠깐 다리가 흔들렸고 나는 계단아래로 떨어졌다.

내가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떨어지면서 벽돌에 머리를 맞아서 이틀동안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그리고 몇일 간 뇌출혈이 발생하지 않는지 살피기 위해 입원해야 했다. 내 첫사랑 그녀는 내 옆 병실에 있었다. 그녀는 누워 있었다. 누워서 창 밖을 바라보며 남은 날을 하나씩 세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창백하지만 따뜻한 미소와 그녀를 보면 내 불운도 사라지는 듯한 느낌에 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남은 날을 손꼽아 세는 여자와 불행하게 살아온 남자는 서로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사람을 깊이 사랑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남은 날은 하나씩 꺼져갔다.

그날은 그녀가 불행히도 퇴원하는 날이었다. 우리는 퇴원하는 날에 맞춰서 병원이 있던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를 했다. 그리고 아현동 달동네에 사글세 방을 하나 얻어서 거기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살림이라고 말하기도 초라한 것이었지만 하루가 일년처럼 행복했다. 아침 일찍 아직 숨 쉬는 그녀를 안도하며 막노동에 나갔다가 이른 저녁에 돌아왔다. 그리고 이른 저녁부터 밤 늦게까지 우리는 내일이 없을것처럼 서로를 느끼다가 꼭 안은채로 잠들었다.

오개월이 흘렀다. 그녀는 살이 많이 빠졌고 더 이상 먹는것도 힘들어했다. 그저 내가 옆에서 꼭 안아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어느날 아침 내 품에 안긴 그녀는 온기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았다.

그녀를 보내고 나는 곧바로 군대에 갔고 그리고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살려고 했지만 그녀는 내 그림자 같이 늘 가슴 속에 가시로 있다.

결혼을 했고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내 그림자처럼 그녀의 기억은 늘 가슴 한 구석에 서늘하게 남아있다.

체크무늬 스카프. 그녀가 마지막 아침까지 두르고 있었던 스카프와 지금은 아파트가 되어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아현동 달동네를 지나면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생채기에서 짙은 핏물이 흐르는 것 같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내 시간은 아직도 22살에서 멈춰있다.

댓글 4

근로복지공단 · w*****

ㅜㅜ 형 마음에 묻고 살쟈
힘내요

현대자동차 · n******

한없이 열렬했고 눈물마저 뒤섞인 사랑을 했네요. 좋은 사람이라 좋은 사람과 사랑했고 좋은 사랑을 후회없이 퍼줬기에 그만큼 더 깊이 각인되어있는 추억일겁니다. 그리고 그 아련한 사랑이 밑거름이 되어 가족을 가져다주었지요

서울교통공사 · 이*****

22살 젊은 나이에 최선을 다한 사랑이네... 그 마음 다 알지 못하겠지만...어떤 사랑은 끝나도 끝나지 않는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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