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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사이언스 키드의 생애 (2005년 글)

국방부 · 별****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 80년대는 그야말로 꿈의 시대로 믿어져 왔다. (난 75년에 국민학교를 입학해서 80년에 졸업했다.) 유신시대 말엽이던 당시 국가는 80년대가 되면 모든 것이 장미빛으로 바뀐다고 교과서에 써 놓고 선전을 해댔으며 그 "환상"을 뒷받침하는 것은 "산업화" 라는 낱말이었다.

그 환상은 지금 90년대에는 "암울했다" 라는 상투적이기 그지 없는 단어로 표현되는 80년대가 도래하면서 산산조각이 나 버렸고, 장미빛 인생이 보장되는 꿈의 시대는 순식간에 2000년대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지금도 꿈의 시대는 순식간에 2000년대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지금도 사람들에게는 2000년이 무언가 기대할 만한 시대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뭐... 어떤 정부건 국민들에게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니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문제는... "꿈의 2000년대"를 약속할 만한 근거랄까 뒷받침이 되는 것이 "과학기술"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여기 학생운동이 온 세계를 휩쓸던 68년에 태어난 한 아이가 있다. 할아버지는 그 아이가 나중에 법관이 되기를 바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지만 이미 소년의 사춘기는 온통 "과학기술"의 환상 속에 도배가 되고 있었다. 그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 이 나라에서는 가장 먼저 세워졌다는 어느 과학기술 연구소에서는 비록 대부분 남이 기술을 베낀 것일 망정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술적 산물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미국에서 모모 공학을 전공한 아무개가 이사대우에 아파트와 집까지 얻어서 약관 30대에 금의환향 했다는 입지전이 도처에 출몰했다. 90년대에 엄청난 베스트셀러로 부활할 이 휘소 박사의 신화는 이미 그 싹을 드러내고 있었고, 수십년래의 부동의 인기 직업이던 판검사와 의사에 대적할 만한 반열에 과학기술자의 이름이 오르게 된다.

소년의 어린 시절에는 위인전의 목록에 이순신이나 세종대왕 못지 않게 아인시타인이나 퀴리 부인의 이름이 중요시된다. 이런 책들을 읽고 자란 세대는 과학자의 삶이 숭고하고 정열적이고 인류를 구원하는 일임과 동시에 명예와 존경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이십년 뒤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몇푼의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공해 물질을 양산하는 회사의 이윤추구에 몸 바치게 되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면서.

공대에서 1등한 놈은 자전거 회사에 취직하고 그나마도 안 된 놈은 할 수 없이 대학원이란 곳에 도피했던 50년대를 기억하는 부모세대는 처음에는 주저하지만 곧 엄청난 첨단기술의 쇼와 당시로는 엄청난 특혜였던 군역면제를 받으며 배출 된 귀때기가 새파란 20대 박사(!)님들을 테레비에서 보면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식을 이공계통으로 밀어 넣는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명예, 안정된 수입, 우아한(?) 생활, 그리고 지적 허영이다. 적어도 당시의 "과학기술" 엘리트는 그런 것들을 모두 가진 존재로 비쳤다.

중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사이언스 키드는 더욱더 과학이 주는 환상에 빠져든다. 그것이 상당부분은 사회적 필요에 따라 조작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서 말이다. 헐리우드 키드에게 영화는 "꿈의 공장" 이듯이 사이언스 키드에게 "과학"은 (대부분 기술과 혼동된 것이지만) 요술지팡이였다. 학교에서는 툭하면 기술입국을 부르짖었고 과학경진대회니 수학경시대회니 하는 것은 점점 장려되고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택하는 것은 성적 좋은 학생에게 당연한 것이었고 문과를 가는 사람은 수학에 적응하지 못하는 둔재거나 사이언스 키드가 빠져 있는 환상에서 헤어난 정말로 머리 좋은 사람들의 몫이었다.

과학고등학교가 생기고 연이어 과학기술대와 포항공대가 창설 된다. 대학의 이공계통은 과학발전을 등에 업고 계속 수적 팽창 일로를 달린다. 물론 대학이 등록금 수입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수도권 대학 정원 동결이라는 강력한 정책도 이공계 인력부족이라는 명제 하에서는 무력해진다.

남자 고등학교에서는 이과생 수가 문과생을 능가하게 되고 워커와 철모로 상징되던 공대생의 이미지는 깨끗한 실험복을 입은 고매한(?) 연구자의 그것으로 바뀌어 간다. 중학교 때 은사님의 집에 다시 모인 친구들은 거의 하나같이 이과생이었고 어린 시절의 그들을 잘 아시는 선생님은 이 아이들 중에 이과에 맞는 것 같았던 아이들이 과연 몇이나 되었는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신다.

그리고 사이언스 키드는 이공대학에 진학하고 공부를 계속한다. 문과애들이 데모 같은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는 조국의 앞날을 위해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기 위한 기초 공부를 하느라 고교때 못지 않은 정신적 노가다를 수행해야만 했다. 아무리 너네가 잘나 보았자 결국은 우리의 밑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법대 친구의 말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여겨졌다.

그 사이 팽창일로를 겪은 대학의 이공계는 마침내 공급과잉 현상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미국 공학박사의 대우는 이사급에서 부장급으로 부장급에서 과장급으로 수직강하를 시작하더니 그나마 구하기가 어려워져 도처에서 박사 실업자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말로만 듣던 박사가 접시 닦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젠 회사가 박사를 골라 뽑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예전처럼 모셔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연구소가 세워지지만 취직을 한 사이언스 키드는 자신의 연구보다 무슨무슨 기술진흥법에 의해 연구소의 토지가 면세라는 사실에 회사가 더 관심을 가진다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에 직면한다. 자신은 단지 콩알만한 연구소에 달려 있는 엄청난 연구소 부지의 탈세를 위한 얼굴마담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이제 더 이상 과학기술자는 선망 받는 직업이 되지 못한다.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실이라는 신화는 그에게 늘 피곤하기 짝이 없는 격무를 당연한 듯이 강요하고, 인구분산 정책의 희생양으로 선발된 과학기술자 집단은 그토록 옛날에 경멸했던 문과 친구들에 의해 산간벽지의 연구소 타운으로 밀려나서 애인에게 걷어 채이고 선본 여자의 부모들에게 거부감을 주기 시작한다.

평생을 이 한몸 과학기술 발전에 바치겠다던 사이언스 키드는 그토록 빛나는 연구생활을 했던 선배들이 (엄청난 대우와 아파트까지 얻어서 프로야구 선수같은 연봉협상을 했던....) 40대의 나이에 머리가 녹슬었다는 이유로 연구소에서 쫓겨나는 장면을 목도하기 시작한다. 그러기 싫으면 과학기술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경영직으로의 변신을 하는 수밖에 없다.

후배나 동기중에는 변리사라는 직업의 인기가 엄청나게 폭등하고 그들은 더이상 과학기술자의 삶에 환상을 갖기를 거부한다. 증권을 만지작 거리는 친구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접대비로 공짜 술을 마시는 동안 그들은 보통의 샐러리맨 봉급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박봉에서 일이만원을 추렴해서 소주를 홀짝거리며 미래를 걱정한다. 한때 최고의 급료라던 모모연구소의 급료는 해마다 동결 되어서 이제는 이 나라 대졸자 초임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연구소는 걱정 없다. 늘어난 과학기술자는 여전히 공급 과잉이고 입소 희망자는 줄을 서 있으니까. 그래도 아직 과학기술자들에게 주는 급료가 아까운지 이나라에서 제일 규모가 크다는 대학의 공대는 숫자를 두배로 늘이려 하고 시설은 하나도 갖추지 않은 연구소에 사람만 채워 넣으면서 왜 결과가 나오지 않는냐고 독촉을 한다.

술에 취한 친구의, 우리는 5공 과학기술 진흥정책이란 과잉선전의 산물이라는 자조를 들으면서 사이언스 키드는 자신의 생이 헐리우드의 환상 속에 사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와 무엇이 다른가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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