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픽 결혼생활

아내와의 연애사-8 (시즌1 fin)

작성일2022.04.06. 조회수1,780 댓글29

* 연애사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았지만 아직 연애는 시작도 못한 스토리네요. 체력의 한계로 이번 이야기까지를 시즌1으로 하고 추후 정비하거나 스핀오프를 써보겠습니다. 미흡한 글을 좋아해주신 분들께 감사!

- 지난 7편에 이어

#아내와의연애사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내 공간에 기꺼이 들어와 준 그녀를 위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나누고 싶었다.

돈의문 터를 끼고 강북삼성병원을 돌아난 언덕을 올라가다보면 서울특별시교육청이 나온다. 그곳을 지나면 내게는 휴식 같은 공간이 나타난다.

15년 전 학부시절 나는 이 길을 처음 밟아봤다.

현재 재개발 후 경희궁 자이가 들어선 자리에는 원래 오래된 마을이 있었다.

어스름한 저녁을 아슬아슬하게 밝히는 대포집 황색등의 미세한 떨림이 깊은 동네의 역사를 가늠케 했다.

다시금 발길을 돌려 옛 기상청 옆 성곽 아래로 소담스레 조성된 월암근린공원에서 숨을 돌리고 도심을 쳐다보면 묘한 청량감이 들었다.

벤치에 앉아서 고개를 돌리면 홍난파 가옥이 보인다. 담쟁이 덩굴이 간조롱하게 덮고 있는 오래된 벽돌집

오묘한 부조화를 느끼며 홍난파 가옥을 넘어 골목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딜쿠샤와 권율 장군이 심은 것이라 불리는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가 나온다.

나무 아래 앉아서 심호흡을 하면 걱정도 함께 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녀와 함께 월암근린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잠시 타오르는 저녁 노을을 바라보았다.

👦🏻: “덥진 않아요? 좀 많이 걸었죠.”

👩🏻: “나 걷는거 좋아해요. 근데 진짜 여긴 공기가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느낌이 드네요. 묘하다. 대로변에서 조금만 들어왔는데 신기해. 홍난파 가옥이라고 했나? 교과서에서 배운 작곡가가 살았던 집이라니 신기하네요. 이경후씨 말대로 안어울리는 것들이 모아져서 어울림이 되는 공간같다.”

👦🏻: “좋아해줘서 다행이네요. 저 안쪽에 딜쿠샤라는 건물이 있어요. 힌디어로 이상향이라는 뜻인데 거의 100년 정도 된 건물이에요. 외국인 독립운동가랑도 관련된 곳인데 그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들려줄게요. 그냥 나는 여름이나 가을 저녁 즈음에 이 동네를 걸어다니면 우울한데 안우울하고 쳐지는데 안쳐지고 뭐 그런 역설을 느껴요.”

👩🏻: “ㅎㅎ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알 것 같은 기분이네요.”

그렇게 다시 발걸음을 옮겨서 구획상 행촌동이 되는 딜쿠샤, 은행나무 앞에 섰다. 독특한 공간에 감탄하던 그녀는 이내 무엇인가를 찾는 듯 두리번 거렸다.

👦🏻: “뭐 찾는거에요?”

👩🏻: “은행나무요. 은행나무는 암수가 있거든요. 이걸 자웅이주라고 해요. 주변에 머지 않은 곳에 다른 은행나무가 있을 것 같아서 찾아봤어요.”

👦🏻: “ㅎㅎ 제 매력을 뽐낼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해서 차윤서씨를 데려왔는데 제가 차윤서씨 매력에 더 빠지네요.”

👩🏻: “ㅎㅎ 원래 매력은 흘리려고 작정하면 냄새가 되고 은은하게 있으면 향기로 풍기는거에요.”

👦🏻: “한 수 배우네요.”

👩🏻: “근데 여기 정말 좋아요. 큰 나무, 독특한 건물, 작은 골목, 노을까지 꼭 예쁘게 짜놓은 카펫 같은 느낌이야.”

👦🏻: “카펫, 되게 어울리는 말이네요. 여기 더 있을까요? 아님 옮길까요?”

👩🏻: “다음 장소가 또 있어요? 가요 그럼”

딜쿠샤가 있는 골목길을 빠져나와 구세군 영천교회를 지나 사직터널 위를 건너 언덕을 오르면 인왕산 입구가 나온다. 그곳의 벤치에 앉아서 보는 서울의 야경은 참 예쁘다. 나는 그곳에서 그녀에게 고백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이 요동하여 울렁이다가 딜쿠샤가 있는 골목을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그만 고백을 내뱉고 말았다.

이제는 어두움이 더 짙게 깔린 시간, 노랗게 건들거리는 가로등 아래를 그녀가 지날 때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입을 뗐다.

👦🏻: “차윤서씨, 우리 만나볼래요?”

잠시 눈이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커지던 그녀는 이내 초승달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그럴까요?”

‘그럴까요’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만개한 웃음을 지으며 주저 앉았다.

👦🏻: “후아.. 나 진짜 엄청 떨렸어요. 당신이 거절할까, 혹여 ‘생각해볼게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처럼 유예하는 말을 할까.. ‘그럼 이 분위기 어떻게 해야하지?’ 속에서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날아다녔어요.”

👩🏻: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강단 있게 고백했네요. 만나요. 나도 이경후씨에 대한 내 고민이 다 풀렸네요.”

손끝이 살짝살짝 닿던 우리는 이내 손을 잡았다. 골목을 지나 편의점에서 음료를 샀다. 인왕산 입구에 앉아서 야경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 “차윤서씨, 나는 장거리 연애가 처음이에요. 혹여 걱정되는게 있다면 미리 말해줘요. 내가 당신 안 걱정되게 노력할게요.”

👩🏻: “주중에 열심히 살고 주말에 신나게 놀아요. 사실 난 예전에 만나던 사람이 멀리 일을 하러가게 되어서 엉겁결에 장거리 연애를 잠깐 해봤어요. 그 새ㄲ.. 아니 그놈이 바람나서 결국 헤어졌지만요. 믿음이 제일 중요하지 않겠어요? 난 이경후씨를 온전히 믿기로 마음을 먹고 이 연애를 시작해요. 믿을만해 보여서.”

👦🏻: “그래요. 믿어줘요. 장거리 연애라는 타이틀이 무거워 보여서 쉬이 시작하기 어려웠을텐데 날 선택해줘서 고마워요. 차윤서씨 선택에 후회가 없도록 내가 더 좋은 모습 보여줄게요.”

👩🏻: “이경후씨는 나한테 바라는거 없어요?”

👦🏻: “지금은 너무 좋아서 딱히 생각나는건 없어요. 다만 멀리서 있으니 건강 잘 챙기고 있으면 좋겠어요. 상대가 힘든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처럼 슬픈일이 없으니까.”

👩🏻: “그래요. 최선을 다해 건강할게요. 우리 잘 해봐요.”

어느새 우리는 꽉 잡은 손을 흔들며 걷고 있었다.

사직단을 지나서 서촌으로 가 저녁을 먹고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그녀를 배웅하며 아쉬움을 담은 손을 흔들었다.

상대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애쓰며 사랑을 한 1년 6개월의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시즌1 Fin.

#남친의연애일기 #남편의생존일기 #아빠의난중일기

아내와의 연애사-8 (시즌1 fin) 월암근린공원에서 본 홍난파가옥

아내와의 연애사-8 (시즌1 fin) 살짝 보이는 딜쿠샤와 500년 된 은행나무

댓글 29

새회사 · h*****

시즌2 언제 연재하나요

서울특별시교육청 · D******** 작성자

시즌1 이야기는 제가 짬날 때 후루룩 쓰느라고 다시 읽어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많네요.. ㅎㅎ 좀 정비하고 중간고사 출제 끝나면 생각해보겠습니다! 감사!

새회사 · 디***

휴재없이 시즌2 바로 가는게 요즘 트렌드던데 바로 달리실거죠?

서울특별시교육청 · D******** 작성자

유행을 타지 않는 사람입니다. (엄근진) 감사합니다 ㅋㅋㅋ

아시아나항공 · q******

나도 좋아하는데 여기 ㅋ

서울특별시교육청 · D******** 작성자

좋은 곳을 알고 계시네요! 😊

NH농협 · 후***

현생은 잠시 미뤄두시고 시즌2 집필에 몰두하실때가 아닐까 싶습니다ㅋㅋ
현실에도 이런 소설 같은 만남과 대화를 나누시는 분이 있을줄이야...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서울특별시교육청 · D******** 작성자

현생 미루고 싶은 마음은 매일 간절합니다만.. 제가 일을 안하면 수업 진도를 못나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간 시즌2로 돌아오겠습니다.

DB손해보험 · 잘********

1-8 한번에 봤어요
작가님 글 구독하기 만들어주세요~~~

서울특별시교육청 · D******** 작성자

아이디부터 따뜻하셔라...! 감사합니다. 😊

작성일2022.04.06.

한국에스지에스 · 바**

작가님 시즌2 기다립니다^^ 너무 따뜻하다🤭

서울특별시교육청 · D******** 작성자

감사합니다. ㅎㅎ 시즌2는... 언제 나올지 모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회사 · i********

아니 작가님 글 제발 널리널리 이건 모든 사람이 다봐야해요…. 필력 진짜 너무 좋으세요!!! 영화로 만들어지면 너무 좋겟다 머리속으로 장면 장면 상상하며 봤어여!!!

서울특별시교육청 · D******** 작성자

안녕하세요? 이런 댓글을 보면 좋아서 입이 씰룩대는 30대 중반 아재입니다. 일기장 같은 글 몇편을 올렸다고 ‘작가’라는 고고한 직명으로 불리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비행기를 탄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수가 없네요.

아내와 제가 머물던 장면을 상상하며 보실 수 있었다는 것보다 글쓴이인 저에게 기분 좋은 말이 없네요.

ㅋㅋㅋ 널리 알려주세요. 제가 유튜브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커뮤니티를 하는 것도 아니라..

무한 감사!

작성일2022.04.07.

새회사 · i********

여기저기 퍼다 날라도 되나요?ㅋㅋㅋㅋㅋㅋㅋ

작성일2022.04.07.

서울특별시교육청 · D******** 작성자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애매하네요. ㅋㅋㅋ 링크를 퍼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라인플러스 · d*********

뒤늦게 정주행하머 딜쿠샤, 홍난파가옥, 월암근린공원 지도에 찍어뒀어요. 서촌과 인왕산쪽 좋아하는데 독립문주변에 이런데가 있는지는 몰랐네요. 아기가 어려 언제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 장소들도 꼭 가보고싶습니다. 글은 아빠의난중일기 글까지 엮어서 독립출판같은데서 엮어나와도 좋겠어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현대미포조선 · a********

시즌2공지글보고 정독하러왔습니다..ㅎ 재밋어요~~~~마지막회에는 역시 "다음 날" 이 ~~!!! ㅎㅎ시즌2 기다립니다ㅎ

서울특별시교육청 · D******** 작성자

아이고 감사합니다 ㅎㅎ

서울특별시교육청 · D******** 작성자

글을 사랑해주셨던 분들의 관심을 바라오며 말씀드립니다. 시즌2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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