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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흙수저의 넋두리와 살아온 이야기(긴글)

비공개 · 🕊*****
작성일2023.05.28. 조회수982 댓글15

비도오고 기분도 울적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한번 써보려 합니다.
기억의 조각이 다소 흩어져 있어 맥락없이 쓰는점 양해바랍니다.

1. 어렴풋이 남아있는 5~6살때 기억
달동네에 살았어요. 재개발 되기 직전에 판자촌? 비슷한 동네에서 살았고, 동네사람들끼리 가난하지만 서로 친했던 기억이 많이 남아있네요.

90년대 중후반 엄마는 미싱일을 했었고
아빠는 택시기사를 하다가 imf때 실직 했었어요.

실직이후 아빠는 동네사람들과 밤새도록 놀음을 하고
엄마는 횟집에서 일하던 기억이 나네요

이때는 제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1년동안 입원, 전원하며 병원을 전전하던 기억, 아빠의 놀음과 부부싸움 등 기억이 남네요

2. 2000대 초반 불행의 시작 카드돌려막기와 찾아온 불행했던 학창시절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전무한 금융지식이 불행의 시작이 아닌가 합니다.
합리적인 소비와 저축을 했었어야 했는데

엄마 아빠는 서로 대화가 단절된 채 약간은 포기한 가정 생활을 한건 아닌가 싶네요.

그 와중에 아빠는 몇년간 백수 놀음 생활을 하다가 대출을 받아
화물차를 사서 개인 화물을 시작하게 되고

엄마는 없는 살림에 두 형제 속셈학원, 태권도, 컴퓨터학원을 보내주었어요.

결국 지출이 감당이 되지 않아 신용카드로 생활을 하였고,
사용액을 감당하지 못해 여러 카드를 발급하게 되어 신용 불량자가 되었죠.

현금 흐름이 완전히 박살나기 시작하면서
주변 동네사람에게 돈을 꾸기 시작합니다
그마저도 갚지 못해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엄마를 찾는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집전화는 10분? 5분에 한번씩 전화가 와서 아예 선을 뽑아버려야 했었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현관문을 노크하여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노크소리를 들으면 흠칫 놀랄 정도네요.

초등학교 5학년때였는데 이때 집안이 망했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후에는 눈뜨고 보지도 못할 여러 일들이 있었네요.

집주인 아줌마한테 엄마가 무릎 꿇은일
동네 아줌마가 돈 안갚는다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엄마뺨 때린 일, 밥먹는데 영화에서 보던 압류딱지 부치러 온 사람들
빚쟁이들을 피해 찜질방에서 숨어 지내던 일
사채업자가 찾아와서 엄마 찾는일 등등...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가정이 거의 깨지게 됩니다.
엄마는 3일, 일주일 한번 집에 들어오고
아빠는 화물차일을 하면서 엄마 없는 두형제 그나마 풀칠하게 해줬죠. 아빠가 장거리 나갈때는 항상 1-2만원을 줬는데
그걸로 두 형제가 일주일을 버텼어요

김치를 사서 밥에 물말아먹거나 김에 밥을 싸먹거나 라면을 끓여먹는게 전부였습니다.
심지어 가스마저 끊어지고 나서는 그냥 과자로 때워야 했죠

장윤정씨가 방송에서 했던말이 정말 공감이 가더군요
추운날 씻기 너무 힘들어서 밖에서 땀흘리고 와서 씻어야 그나마 덜춥다.. 그거 제가 겨울마다 하던일이었어요

당시 춥고 배고픈것 보다 더 힘든건 집에 들어갈때 '오늘은 엄마가 왔을까? 엄마 보고싶다' 하지만 집에 들어선 순간
여느때와 다를바 없는 집구석에 다시한번 좌절하는거였습니다.

공부를 잘했던 형은 사춘기와 가난이 맞물려 또라이가 되었습니다. 매일 맞고 살았어요
형이 너무 무서워서, 엄마 없는 집이 너무 싫어서, 그 가난한 느낌이 싫어 초6때 밖에서 밤새는일이 잦았습니다.

집에는 들어가기 싫고 배는 고픈데 갈곳이 없던 저를
당시 담임 선생님이 항상 챙겨줬어요.

주말부부셨는데 평일에는 가끔 집에 데리고가 맛있는 음식을 잔뜩 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급식비, 수학여행비 같은 학교 경비는 항상 밀리고
옷도 매일 같은 옷만 입던 제가 안쓰러우셨는지
정말 사랑으로 저를 감싸주셨죠. 선생님 너무 보고싶습니다.

방학때는 정말 배가고파서 미치겠는거에요
너무 배가고파서 무료급식소에서 한끼 얻어먹고
친구네 집에서 한끼 얻어먹고 그랬답니다.

어찌저찌 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고
형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면서 집안이 더 힘들게 되었습니다.

급식비, 운영지원비, 학비 미납은 기본이었고 하.. 지금생각하면 단돈 3만원이 왜그렇게 부담이었는지.. 단돈 3만원 정도가 갑자기 필요하면 부모님의 한숨이 왜그렇게 듣기 싫었는지..

오래된 가난은 경제적인면 뿐만 아니라 정서까지 갉아 먹는다고 했던가요
그렇게 웃음많고 인기 많고 밝고 잘나가던 저는
점점 위축되어 누가봐도 찝찝한 소위 찐따가 되었죠

중학교때 공부를 그래도 전교 상위권에 들정도로 준수하게 했는데 결국 실업계를 가게 되었어요.
돈이 없으니깐요
그 마저도 최악인건 고등학교 입학금도 없어서 고등학교 입학도 못할뻔 했답니다 42만원이 없어서..

엄마가 겨우 주변사람한테 빌려서 입학금을 내고 무사히 입학했어요. 입학 후 전교 1~2등 하면서 3년동안 장학금을 받느라 학비는 면제였지만 늘 급식비가 문제였어요.

인문계 다니던 형은 졸업 이후에도 학비를 못냈었죠
결국 형은 대학교를 포기하고 긴 방황을 하게 됩니다.

저는 수능 최저 등급만 맞추면 수시로 인서울 갈 수 있는 조건이 되었으나 저 역시 포기하게 됩니다.

저때는 학자금 대출도 없었고, 그런 지원받을 수 있는 루트가 없었어요. 아마 있었다면 제가 몰랐거나 애매한 자격요건때문에 해당되지 않았던걸로 기억합니다.

우선 돈을 벌어서 내 스스로 학교를 가자 생각하고
저는 모 대기업에 합격하게 됩니다.
가난이 싫고 집안이 너무 싫어 탈출하고 싶었어요.

3. 인생 2막 시작

첫 월급이 통장에 찍힌날 화장실에서 정말 펑펑 울었어요
단돈 3만원에도 벌벌떨던 우리 집안,
내가 내 스스로 190만원이라는 큰 돈을 벌어보는구나 하면서 정말 펑펑 울던 기억이 나네요.

이때부터 제 인생은 좀 달라지게 됩니다.
늘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던 어두운 묵은때가 점점 벗겨지게 되고 웃음을 되찾고 친구들도 생기고요.

하지만 친구사이에서도 늘 스스로 외로워하고 정서적으로 열등감이 생기게 되더라구요. 정서적 궁핍.. 이거 정말 벗어나기 쉽지 않더군요.

저는 그렇게 10년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군대도 다녀오고
돈을 열심히 모아 20대후반에 2억을 모으게 됩니다.

그리고 운 좋게 수도권에 집도 장만하게 되고요.

그래도 항상 부모님이 계신 집에가면 그냥 싫어요
그냥.. 그 10년동안 내가 힘들게 일하면서 느낀것들이

' 아 우리집은 정말 열심히 산게 아니구나
너무 주먹구구로 살았구나

내가 뼈빠지게 일하면서 자산을 축적하는 동안
우리집은 그대로였어요.
이미 가난에 찌들어 그냥 하루하루 영혼없이 살아'지는' 삶

점점 집안과 내 삶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져 더욱더 집에 가기 싫더군요
그 와중에 은근히 나를 비빌 언덕으로 생각하는 우리 부모님
전 그 은근한 그 느낌이 너무 싫었습니다.

10년동안 그래도 집에 도움 많이 줬습니다.
엄마 수술비, 월세보증금, 이것저것 급전

이제는 당연하게 내가 비빌 언덕이라 생각하는 그게 싫어서
인연을 끊어야 하나 싶으면서도

부모님 당신들의 그 삶이 불쌍해서(특히 엄마) 놓질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 정말 불효자죠?

4. 연애

어두웠던 제 삶에도 행복이란걸 느끼게 해준 여자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많이 사랑했고 지금은 헤어졌지만
정말 의지를 많이 했었습니다.

연애때 기대게 되고 집착하게 된게
어린날의 정서적 궁핍과 애정결핍에서 비롯된게 아닌가 싶네요.

돌이켜 보면 헤어짐의 사유가 지금까지 쌓아온 나의 불안전한
정서때문인것 같아 더욱더 미안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제가.. 감히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여자가 저의 집안을 보며 결혼할 수 있을까요?

행여나 저의 어두운 정서를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항상 가슴속 깊은곳에 담아두었습니다.

그랬는데.. 그냥 외로워요
내 삶이 너무 외롭고 불쌍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또 잃게 될까봐
앞으로 또 어떻게 누군가를 만날수가 있을까요?

저처럼 인생에서 외로운 싸움 하시는분, 님은 어떻게 살고 계신가요?

댓글 15

블라인드 지수 우수 기업 Google Korea · l*********

형님 화이팅입니다!!! 앞으로도 잘 될거야

비공개 · 🕊***** 작성자

고맙습니다 ㅜㅜ

동화약품 · 맑******

고생했어 잘자라주었구나..

비공개 · 🕊***** 작성자

감사합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정말 따뜻한 댓글이네요

작성자가 삭제한 댓글입니다.

비공개 · 🕊***** 작성자

지금은 그래도 저혼자 잘 사는편이에요.
이거 비공개는 베스트 블라인더 되면 주는 포인트로 했어요

BGF리테일 · I********

안믿기겠지만 분명 있다. 형의 인연.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누구나 결함이 있지만 쓰니는 스스로의 모자람을 알고 인정하고 있잖아. 어려운 일인데 대단한거 같아. 그런 형을 알고 보듬어주는, 서로가 보듬어줄수있는 그런 사람을 분명 만날거야.
나도 응원할게 앞으로도 잘 되기를.
멋지다. 아자아자!!

비공개 · 🕊***** 작성자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

새회사 · f*****

저도 어린시절 회상하면 어떻게 버텼나싶을정도로 힘들었어요 일일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이렇게 살아야 하나싶을정도로요 초등학교3학년때 죽고싶다는 감정을 모르니까 유기불안느끼고 자책감 정서불안 내가 아무것도 할수없다는 무력감 다 느꼈어요 현재 33살인데 ㅋㅋㅋ 아직도 그 감정이 훅 올라와요 아 그후에 죽고싶다는 생각을 한 몇천번은 한것같네요 ㅠㅠ 불행배틀 뜨자고 한건 아니지만 저도 33살에 자산+돈 해서 4억정도 있어요 진짜 환경이 그러니까 악바리가 되더라구여……대학진학은 못했구요 평생 이기억 안고 살겠죠 평생 치료받으면서요…..쓴이님 앞으로 살날 많으니 힘드시면 기대시고 심리치료도 받으시고 할수 있는건 다해봐요 우리ㅠㅜ

비공개 · 🕊***** 작성자

정말 잘 살아오셨네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원격으로 안아드릴게요

작성자가 삭제한 댓글입니다.

비공개 · 🕊***** 작성자

감사합니다
다시 추스려 볼게요. 잠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졌었나봐요

새회사 · l*********

멋지고 멋져여! 그렇게 살아오신 님의 삶을 불안한 정서가 아니고 긍정의 에너지 덕분이예요! 본인을 불쌍하게 여기지마시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세요! 정말 멋진 분이십니다👍불행과 행복은 한끗차이 라고 하잖아요! 그 한끗을 행복쪽으로! 앞으로 이제 꽃길만 걸으십니다!

비공개 · 🕊***** 작성자

그저 감사합니다 다시 좋아질꺼에요

작성자가 삭제한 댓글입니다.

비공개 · 🕊***** 작성자

최근에 헤어져서 더 그런가봐요
만날땐 내옆에 누군가 있다는것만으로 든든했는데 말이죠

비공개 · 🕊***** 작성자

그럼 가족들이랑은 사이 좋아요?

비공개 · 🕊***** 작성자

고맙습니다. 잠깐 지나가는 감정일꺼에요
늘 그랫듯이 다시 추스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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