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픽 블라블라

유년기의 기억

LG디스플레이 · l********
작성일2018.05.06. 조회수364 댓글13

1. 철근

" 김동수, 철근이 뭐야 이새끼야" 

담임선생님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전날, 부모님의 직업을 조사해오는 종이를 받았다.

"엄마, 이거 써오래."

엄마는 묵묵히 아빠의 직업란에 '철근' 이라고 썼다.

어린 나로서도 철근이 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엄마, 철근이 뭐야?"

엄마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식당일을 하는지, 밤일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엄마는 매일 늦은 밤이 되어서야

피곤한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엄마의 직업란은 전업주부로 써줬다.

"철근이 대체 뭐야? 철물점을 하시는거야?"

늙은 담임선생님의 주름이 더욱 짙어졌다.

"철근 이라는데요.."

별 다르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로서도 철근이 무얼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별안간에 오른쪽 뺨에서 불이 번쩍 튄 것처럼 뜨거워졌다.

그 다음에는 귀가 먹먹해졌다.

담임선생님이 뭐라고 말을 했는데 잘 들리지가 않았다.

좋은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이 일을 말하지 않았다.

왠지 엄마가 슬퍼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후에 알게된 것은 아버지가 철근공이라는 것이다.

건설현장에서 철근이란 구조물을 작업하는 인부라는 뜻.

담임선생님 정도의 나이라면 얼핏 어떤 일을 하는 건지 감으로라도 알만했을텐데

왜 나에게 그리도 모질게 굴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만만한 학생 중 한 명이 나였나 싶다.

2. 체육대회

어릴적 체육대회를 하면 반아이들 모두에게 큼지막한 선물보따리를 주었다.

보따리안에는 온갖 과자들이 있었고, 티셔츠 한장도 있었다.

다소 촌스러운 진녹색에 어린아이 둘이 손을 맡잡고 있는 그림이었다.

나는 그 티셔츠를 날이 추워질 때까지 입고 다녔다.

아마 학부모들끼리 돈을 모아 선물을 냈을 것이고, 노름빚에 집나간 아비를 두고 홀로 두 자식을 키우던 젊은 엄마에겐 신경쓰지 못했을 일이었을 것이다.

하루는 주말에 성환이네 집에 놀러갔다.

성환이네 집 벨을 몇 번이고 눌러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대문밖으로 나온 성환이가 말했다.

"우리 엄마가 너랑 놀지말래."

대문 안에는 같이 놀던 승훈이도 얼핏 보였다.

"그.. 그래? 알았어." 

갑작스런 대답에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집에 다시 걸어오는 30분간 생각했다.

왜 성환이네 엄마는 나랑 놀지 말라고 한 것일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아무래도 성환이랑 승훈이는 같은 동네에 살고 멋진 벽돌집에서 사니까

나랑 어울리면 안되나보다. 어렴풋이 생각했다.

왠지 서글퍼졌다.

집에와서 오래된 만화책을 읽으면서 조금 울었다.

지난번 소풍때 재승이가 성환이 김밥에 흙을 끼얹고 괴롭힐 때 

대신 싸워준 일이 후회됐다.

3. 급식비

어릴적 급식비는 우리집 형편에 조금 비쌌나보다.

제 때 못내서 매번 칠판 옆 '급식비 미납자 명단' 에 내 이름이 올랐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조금 주눅이 들었다.

집에선 제대로된 밥을 먹기 힘들었기에 학교 급식을 많이 먹었다.

다른아이들이 먹기 싫다고 남기는 우유도 모두 내가 챙겨서 먹었다.

하루에 세 개는 먹은 듯 하다.

우리때는 아이들끼리 배식당번을 정해서 밥을 주곤 했는데

어느날 한 아이가 내 식판에만 유독 적게 배식을 해주었다.

" 조금만 더주라."

그 아이는 입을 앙다문 굳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 넌 급식비도 안냈잖아."

난 또다시 벙쪘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왜 나만 급식비를 제 때 내지 못하는 걸까?

집에와서 겪은 일을 말했다.

늦은밤 피곤한 얼굴로 엄마는 나를 부둥켜 안았다.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내일 꼭 엄마가 급식비 줄게... 정말 미안해 우리아들."

불을켜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엄마가 운 것 같았다.

엄마한테 미안했다.

댓글 13

에스엘 · 🚨********

.... 다음세대는 이런 실수를 번복하지 않도록... 우리 항상 깨어잇자

SK건설 · m*****

담담하게 글 잘쓰셨네요... 그 시절의 어른들은 어쩜 아이한테도 그리 모질었는지..

한국철도공사 · 레****

예전교사들은 쓰레기 많았음
대놓고 촌지요구에.. 나도 초2때인가 뺨맞고 기절해서 부모님 온적있었음.. 그뒤로는 안때린거 보면 뭔가 있었나봄..

작성자가 삭제한 댓글입니다.

한국전력공사 · i*********

이런 글에 이런 댓글을 왜 쓰는지 이해가 안돼;;;;

롯데카드 · 희**

아팠던 기억때문에 자신에게 모질게 굴지말고~ 어둠속에서 힘들어 하지도 말고~ 그때가 있어 지금이 있는거잖아 앞으로 더 행복하자 잘자랐네 애썼어

새회사 · К*******

진짜 친구들도 .. 진짜 선생도.. 너무나쁘당

한국암웨이 · 기***

잘컸네.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꺼야!

퍼시스 · 송*****

저두 유년시절 기억하면 비슷한 기억이 나요. 어느날은 자다가 생각나서 눈물 흘린적도... 있었네요 ㅎㅎ 지난간 일은 지나간 일일 뿐이라지만 아직도 가끔은 슬프게 기억되네요. 힘들었는데 그 땐 왜 힘들고 슬픈지도 잘 정리가 안되었던 거 같아요. 어른이 된 지금에야 그때의 나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래도, 지금, 여기, 살아있으니 우리 힘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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