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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라슈

삼정KPMG · T*********
작성일2023.12.22. 조회수209 댓글8

"푼돈을 대가로 삶을 팔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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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쌤의 휴가 사건(!)이 일단락 되고 어느 한 주가 시작되는 아침 9시 20분

파트너가 최이사와 함께 고객과 call을 하고 있다.

상사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를 틈타 우리는 잠시 티타임을 가진다.
상사들과 함께하는 티타임은 보통 상사들이 주도하곤 한다. 최이사가 빠진 자리는 박매니저가 제일 고참이다.
그러나 평소 말 수가 없는 박매니저는 대화를 주도하지 않는다.
그저 웃거나 단답으로 대답만 할 뿐 이였다.
특히 최근에는 계속된 격무로 고단한 것인지 그 마저도 잘 하지 않았다.
그저 정승처럼 묵묵히 앉아있기만 할 뿐 이였다.

어쩔 수 없이 내가 그의 바통을 받아 이어달리기를 시작한다.
예의상 박매니저에게 한번 질문하고 팀원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등 식상한 질문을 던져본다.

“박매니저님. 어제 오랜만에 쉬셨죠? 주말에 뭐하셨어요?”

“선생님. 나 헤어졌어. 너무 힘들다.”

박매니저가 그동안 그래왔듯 약간 바보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냥 그랬지.” 하며 대답할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예상밖의 대답에 놀라 되묻는다.

"네?!"

박매니저는 아주 가끔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곤 했다. 2년동안 사귄 여자친구 만날 때 가장 행복하다는 박매니저. “그녀와 만날 때면 내 마음에 사랑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거 같아” 라며 행복해 했다. (물론 이를 듣는 팀원들은 박매니저의 그런 모습에 화들짝 놀라곤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와 어디로 해외여행을 갈지, 결혼하면 집은 어디로 구할지 고민된다며, 엉뚱하게도 솔로인 나에게 조언을 구하곤 했던 그였다.




잠을 못자 푸석한 얼굴. 밤새 울었는지 퉁퉁 부어있는 눈. 숨기려 노력하지만 한눈에 봐도 슬퍼보이는 그의 표정.
그 모습들은 겨울날에 맞이한 나의 이별과 닮아있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을 이어가던 박매니저는 고개를 들어 무언가 말하려고 한다.

.
그 때, 최이사가 휴게실에 들어오며 단칼에 대화를 자른다.

"아 다들 어디갔나 했네. 그 사이를 못참고 놀러들 간거에요?"

최이사는 사람을 기분나쁘게 하는데 재능이 있는게 틀림없었다. “사람을 기분나쁘게 하는 상”이 있다면 단언컨데 지존의 자리는 그의 차지다.

그는 자신이 “지존”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옆집 강아지 뽀삐를 부르는 것처럼 아래위로 손짓하며 박매니저를 부른다.

"박매니저. 파트너님이 부르시니까 잡담그만하고 빨리 나와."

박매니저가 아무 말없이 조용히 최이사를 따라 나간다.

티타임이 끝나고, 그렇게 각자 자리에가서 밀린 업무들을 처리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파트너 방에서 거친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야! 너..너 지금 뭐라고 했어!"

노발대발 송파트너. 돈버는 일 외에 품위라는걸 모르는 그는 가끔 팀원들에게 노발대발 하곤 했다. 나는 평소 같으면 그려려니 했을 것이다.

그러나 들어간 사람은 어떤 일이든 시키면 다하는 박매니저다. 그는 짖으라면 짖는 시늉이라도 할 사람이다.
그가 들어가면 큰소리가 날 일이 없다.

나는 이번만큼은 심상치 않음을 확신했다.

.
"뭐 못해? 못해?!"

"네 못합니다."

"야 임마! 프로가 일을 안한다고? 돈을 받는 프로가 일을 안한다고?"

"일을 안한다는게 아니라, 지금 하는일도 너무 많아서 못한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니 뭐야?! 프로가 일을 맡아서 시간이 모자라면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던가! 아니면 밤을 새워서라도 해내야지. 어디서 핑계만 대나?"

"파트너님. 그러면 파트너님이 말씀하시는 "프로" 새로 뽑으십시오. 제 능력으로는 못합니다."

나는 적잖히 놀랐다.
말끝마다 "네네..." 하면서 말끝을 흐리던 박매니저. 그가 저렇게나 분노하면서 또박또박 말할 수 있는 사람이였던가?

나만 놀란 것은 아닌지 팀원 모두가 동그래진 눈으로 파트너의 방을 쳐다보며 대화를 듣는다.

"뭐? 야! 너 뭐라고 했어? 어? 너 임마 그따위로 할꺼면 당장 때려쳐! 당장 그만두라고!"

“네 좋습니다.”

단호한 대답과 함께 파트너 방문이 열리고 박매니저가 나온다.
그의 안광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렸했고, 그 안에는 깊은 분노가 가득 서려 있었다.

허리를 바로하고 어깨를 곧게 편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매우 이질적이여서 나도 모르게 그가 지나갈 때 길을 비켜주었다.

박매니저는 자리에 앉아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한다. 아니, 업무를 처리하는 걸까. 알 수 없지만 무언가 계속해서 작업하기 시작한다.

파트너 방안에서는 최이사가 친위대 답게 박매니저의 욕을 곁들여 가며 파트너를 달래고 있었다.

한동안 파트너는 방에서 최이사랑 무언가 대화를 나누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방에서 나온다.
박매니저는 점심을 먹으러 갔는지 자리에 없다.
파트너는 주인이 없는 박매니저 자리를 한참 동안 보더니 혀를 차고 최이사와 함께 성큼성큼 나간다.

오후 업무시간

1시가 조금 지나자 박매니저가 들어온다.

뒤이어 파트너가 방에서 나와서 “뽀삐”를 부르던 그 손짓으로 갑자기 나를 부른다.

파트너 방에 들어가자 나에게 갑자기 묻는다.

“박매니저. 무슨일 있어? 왜 갑자기 사직서 올린건데?”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진짜로 모르기도 했지만,
그것을 안다해도 팀원들을 “플란더스의 개” 정도로 생각하는 파트너에게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끔 이름도 헷갈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개만도 못한게 아닌가 한다. 적어도 주인은 자기집 개 이름 정도는 알긴 할테니까. 실제로 그는 우리팀 막내 한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파트너는 뒤이어 한번 더 물어본다.

“아니 자네는 팀원들 상황도 잘몰라?”

한번 더 모른다고 대답했다. 어쩌란 말인가.
오히려 그것을 알아야 하는 것은 “리더”의 자리에 앉아있는 당신이 아닌가?

“알았어 나가봐.”

파트너는 이내 단념한듯 나가보라고 다시 손짓한다.

.
30분뒤.

나는 자리에 앉아 생각하고 있다. 박매니저가 나가면 매니저는 이제 나 혼자다. 그의 수 많은 업무는 내가 이어받는 건가? 혹시 어디선가 슈퍼맨처럼 구원투수가 등장해 해결해주진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 생각의 결론이 “나의 회계법인 생활에 K.O.를 선언할 때가 된 것 같다.” 에 도달할 즈음

파트너가 방에서 나와 박매니저의 자리에 가서 조용히 그를 부른다.

그는 무슨 일이냐며 할말이 있으면 여기서 하시라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또렷했으며 발음은 아나운서 만큼이나 정확했다.

당황한 파트너는 평상시 하지도 않는 존대를 섞어가면서 말한다.

“박매니저님. 그러지 마시고.. 일단 방에가서 이야기 합시다.”

박매니저는 손짓으로 파트너 방을 가리키며 방으로 간다.

그 광경을 보던 나는 혹시 박매니저가 점심시간에 술을 먹고 온 것은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술을 먹지 않고서야 그 유하디 유한 박매니저가 저럴리 없었다.
주객전도(主客顚倒) 아니면 주객전도(酒客顚倒). 둘 중 하나는 틀림 없었다.

방으로 들어가면서 보통 방문을 닫는 파트너는 당황한 것인지는 몰라도 방문을 연채로 박매니저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리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박매니저. 이렇게 갑자기 사직서를 올리면 남은 팀원들은 다 죽으란 말이야? 이렇게 무책임하게 나가는게 어디 있나?”

그 말을 듣자마자 박매니저는 크게 코웃음 친다.

“하!”

파트너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채 빤히 박매니저를 쳐다보다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독이는 척 말한다.

“그래...박매니저... 그럴 수 있어. 이해해. 요새 일이 많지? 그래. 여름인데 휴가…휴가라도 다녀오게. 그리고 오늘 있었던일은 회사생활 하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일도 있는 거니까 서로 잊자고.”

박매니저는 고개를 들어 파트너를 잠시 쳐다보다가, 조용히 말을 이어간다.

“사직서. 내일까지 결재 끝내주시기 바랍니다.”

목에 핏대가 가득선 파트너는 벌겋게 달아오른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떨기 시작한다.

아!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팀원들을 개 취급하던 파트너. “네로(Nello)” 최이사와 함께 무슨 일을 시켜도 묵묵히 해오는 충직한 플란더스의 개들을 부리던 파트너. 그 개들 중에서 가장 충직한 개는 단연코 “파트라슈(Patrasche)”일 것이다. 파트너는 지금 그 “파트라슈(Patrasche)”에게 그야말로 오줌세례를 맞고 있었다.

“할 말 없으시면 나가보겠습니다. 인수인계 해야해서요.”

뒤이어 쓰나미처럼 밀려나오는 파트너의 식상한 저주들을 뒤로하고 박매니저가 나온다.

박매니저는 내 옆을 지나가면서 조용히 말을 남기고 간다.

“미안해 쌤. 이제 못하겠다.”

(계속)

*이 글은 회계라운지에 올린글을 재업로드 한 것 입니다.

댓글 8

원광대학교병원 · 멍**

자알 보고 갑니다~

삼화회계법인 · 𐂂***********

짤이 바로 떠오르는 글

삼정KPMG · T********* 작성자

대댓글 이미지

작성일2023.12.22.

새회사 · 곧**

박매니저님🥲

신고에 의해 숨김 처리 되었습니다.

새회사 · i*********

글 되게 잘쓴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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