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픽 결혼생활

국제결혼 경험자가 드리는 긴 글

새회사 · 아**
작성일2022.02.09. 조회수5,692 댓글46

안녕하세요. 블라 결생토픽을 둘러보다가 국제결혼 하고싶다는 어떤 분의 글을 봤어요.
그분이 국제결혼을 부러워하시면서 하셨던 말씀 중에, '나 자신을 잃어가면서 맞춰야 하는것도 자신이 없다'는 얘기가 있었는데요,
그 말 한마디에 꽂혀서 이 글을 씁니다.

국제결혼, 일단 저는 사랑하는 사람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것이니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시 돌아간대도 이 결혼 할 것이고요.
하지만 정말로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국제결혼이 이 험난한 한국 결혼시장에서 정말 완벽한 제3의 길이 되어줄 것인지는 각자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보셨으면 해요.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이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는 법이에요. 쉬운 결혼생활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각설하고 제목대로 저는 국제결혼자입니다. 연애결혼이고요.
제가 여자고 남편이 저를 따라 한국에서 살고 있어요. 슬하에 아가 한명 있어요.
(노파심에 미리 말씀드리건대 남편 어느나라 출신이냐고 묻지 말아주세요. 대답 안 할거예요.)
속내를 풀자면 책 한권을 써도 부족합니다만... 그래도 서너가지만 써 볼게요.
횡설수설 할테지만, 그래도 써봅니다.

1. 남들과 다른 길을 갈 자신이 있는가?
우리나라는 아직도 나잇대마다 그런게 있죠. 언제쯤이면 뭘 하고, 또 언제쯤이면 뭘 하고...
연령대마다 성취할, 또는 그래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인생의 과업들이 있잖아요.
이쯤이면 아이 낳고, 이쯤이면 집 사고, 이쯤이면 사회에서 어느 정도로 자리잡고...
그런거 싹 다 무시하고 남들 시선 신경 안 쓸 자신 있으신지 꼭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셨으면 해요.

국제결혼은요, 그렇더라고요.
저희는 한국에서 정착하기로 한 케이스라 해당이 없지만 주변 국제커플이나 국제커플 커뮤니티를 보면...
잘 살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그간 이룬 모든 것을 버리고 상대방의 나라로 떠나야 하는 케이스가 많아요.
어느 한 쪽의 모국으로 가면 차라리 낫죠.
제3국으로 가는 케이스들도 의외로 꽤 됩니다.
예고된 이주를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블라에 계신 분들 모두 각자의 커리어패스를 갈고 닦으시는 직장인들이죠.
힘겹게 쌓아온 커리어를 남편/아내 하나 믿고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거,
그렇게 나간 해외에서 다시 역이민해와 한국에서 또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거...
그런 커플/부부들이 많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돈과 시간 소모 역시 어마무시하고요.
그러니 국제결혼을 하시려면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주변 눈치보지 않고, 흔들리지 않아야하죠.
"아니, 넌 아직도 이러저러해?", "그 나이 먹고 뭐 했어?" 이런 소리를 그 어느 누구에게 듣더라도 한귀로 듣고 흘릴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아직도 그게 쉽지 않죠.
저런 얘기는 가족들에게 들어도 속상한 얘기들이니까요.

2. 한국인 배우자의 사회적 무게감
이건 사실 외국인 배우자가 현지어를 좀 잘 한다면 나은 문제이기는 해요.
하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국제결혼 부부 중 현지인 배우자의 사회적 무게감은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것 이상입니다.
예컨대 저희처럼 한국에 정착한 국제결혼 부부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요.
외국인 배우자가 우리말을 아무리 잘 한다 하더라도 한국인 배우자 손을 거치는 것만큼 일이 매끄럽지가 않습니다.

TV에 나오는 외국인들은 안 그렇더라?
비정상회담에 나오는 외국인들은 나보다 한국어 더 잘하고 한국문화 더 잘 알던데?
그 사람들은 그러니까 TV에 나오는겁니다.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하신다면 모든 국제결혼자들이 그런 특별한 외국인들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내국인 배우자를 두었다면 겪지 않아도 됐을 법한 각종 사회적 책무가 한국인 배우자 한쪽에게만 엄청나게 지워집니다.
이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어디서부터 설명하고 얘기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돈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의 사회적 인프라가 얼마나 잘 구축되었느냐의 문제도 아니고요.
내국인 부부들에게 시가, 처가 관련 가족 문제가 있다면 국제결혼 부부들 사이에서는 이 문제가 단골메뉴입니다.
실제로 국제커플 커뮤니티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한국인 배우자들의 격정 토로글이 주기적으로 올라와요.
앞서 언급한대로 외국인 배우자의 한국어 구사력에 따라 난이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역할은 비슷하구요.
게다가 다들 잘 아시다시피, 이런건 부부 개인의 성격도 영향을 미치죠.
국가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특히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 비해 걱정을 덜 하며 사는 경우도 많잖아요?!
만약 나랑 결혼한 외국인 배우자가 카르페디엠 알이즈웰 뭐 이런 스타일이라면(ㅋㅋㅋㅋㅋㅋ) 한국인 배우자분들의 결혼생활 난이도가 배로 올라가기도 합니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내게 물처럼 밀려오라는 말이 있잖아요.
딱 그짝이에요.
맞아요. 힘들어요. 저 역시 가끔은 왜 내가 이 고생을 사서 하나, 하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같은 사람들이 이러한 현실에 불평불만을 하진 않아요.
왜냐고요?
만약 저희가 배우자의 나라에 가서 정착했더라면, 우리의 배우자들이 지금 우리가 하는 역할을 그대로 했을 것이니까요.

사랑하는 배우자가 나 하나를 위해서 가족 친구 다 고향에 두고 나를 따라 타향살이하잖아요.
대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국제결혼을 했으면서도 가족과 친구들을 그리고 우리가 나고 자란 곳을 떠나지 않을 수 있잖아요.
그걸 위한 반대급부라고 생각하는거예요.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거죠.

3. 소소한 행정/금융 문제
이거는 1~2번에 비해 좀 더 지엽적인 문제입니다만...
국제결혼 부부들은 내국인 부부들에 비해 실생활에서 불편한 것들이 꽤 많습니다.
단적으로 금융권 종사자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외국인들은 대출이 안 나오죠.
하지만 한국에서 살려면 금수저가 아닌 이상(ㅠㅠ) 대출 없이는 자산 증식을 하기가 힘듭니다.

예시를 하나 들어볼게요.
제가 아는 국제부부 중에 남편이 외국인인데 외벌이인 부부가 계세요. 아내는 전업주부구요.
외벌이하는 남편에 전업주부. 보통은 이게 집 사는데 문제가 되지는 않죠?
근데 이 부부는 남편이 연봉 1억인데도 아직도 월세를 삽니다.
요새 집값이 워낙 쎄니 매매는 아니더라도 연봉 1억이면 전세라도 갈 법 한데, 아직 월세를 사십니다.
사유는 이제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이 부부는 남편 명의로 대출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사대보험이 있어도 신용대출은 외국인이라 안 나오고요.
담보대출은 더더욱 힘들겠죠.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담보대출 받을 만한 부동산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최근 중국인의 부동산쇼핑 이런건 국제결혼 부부들에게선 예외적인 케이스이므로 논외로 합니다)
따라서 대출받을 길은 아내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아내는 전업주부라 소득이 없네요.

남자든 여자든, 한국에 사는 국제결혼 부부들 중 한국인 배우자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웬만하면 절대 일을 그만둘 생각을 안해요.
왜냐하면 단돈 백만원을 벌어도 사대보험을 쥐고 있어야 하거든요.
내 배우자의 수입과는 관계가 없어요.
배우자가 돈을 많이 벌어도, 리모트잡으로 해외에서 외화 수입이 있어 현금은 부족하지 않은 경우라도,
한국에 정착한 한국인 배우자들은 그와 관계없이 사대보험 이력이 오래 끊기는걸 꽤나 꺼려합니다.
사대보험 이탈됐다가 대출받을 일 생기면 어떡해요?

서류를 하나 떼려고 해도 증빙해야 할 게 많고 보험 하나 처리하려고 해도 해야할 게 많습니다.
이 자체에 대해 불평불만 하는게 아니에요. 안되면 안되는대로 다 적응해서 살아요.
국제결혼자들, 보통은 비자 문제로 관공서나 해외대사관이랑 서류 씨름 무지하게 했던 내공들이 워낙 강해서 웬만한 페이퍼워크엔 콧방귀도 안 뀝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건,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소소한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국제커플에게 더 많을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국제결혼을 한 이상 이런 현실을 평생 헤쳐나가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예요.

4. 평생의 그리움
결국 부부 중 어느 한쪽은 죽을때까지 향수병과 싸워야 하고, 배우자는 그걸 감당해줘야 합니다.
물론 해외로 이주한 후 모국을 전혀 그리워하지 않고 잘 사는 사람들 있지만, 나라는 그립지 않아도 가족은 그립겠죠.
(가족과 연끊은 경우 예외)
몇년에 한번씩 방문한다 해도 그걸론 해소되지 않는 본능적인 그리움과 향수병...
때로는 그게 진하게 올라오는게 눈에 보여요.
그러면 우리같은 한국인 배우자가 받아주는거예요. 나 따라서 타향살이 하느라고 고생 많다고.
마치 제가 임신했을 때 남편이 저를 보듬어 준 것처럼, 남편이 힘들어하면 제가 그걸 묵묵히 받아줘야돼요.
이건 평생을 관리해야 하는 이슈거든요.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내용 중에서 굵직한 것들만 대충 쓰면 이 정도네요.
더 극적인 내용도 많고 더 소소한 내용도 많지만 그걸 다 쓰기엔 너무 힘들고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죠.
국제결혼도 그래요.
제 생각에 국제결혼은, 각자의 모국에서 평범하게 결혼하지 않은(혹은 못한) 댓가로 양쪽 모두 평생 2배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생활이에요.
막말로 결혼생활이 틀어졌을때 이혼하기는 내국인 부부보다 몇배는 더 힘들고요.
그렇기 때문에 여느 결혼과 마찬가지로 국제결혼 역시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서로 사랑이 전제되지 않으면 끌고가기 힘든 생활입니다.

쉬운 결혼생활 없어요. 다들 잘 아시잖아요.

댓글 46

서울경제 · n*******

2번은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인데. 경험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주항공 · i*****

간만에 정성글 잘보고갑니다

비바리퍼블리카 · i*********

글을 정말 잘쓰십니다 이렇게 좋은글에 첫댓글들이 참 아깝네요

한국IBM · i*****

주옥같네요 글을 정말 잘 쓰세요. 그래도 와 닿다요.

스타트업 · 참********

잘 읽었습니다.

스타트업 · 녀****

이런 귀한글 감사합니다..

새회사 · R*******

잘 읽었습니다… 와닿는 내용이 많네요

스타트업 ·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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